재앙의 도서관

스물두 번째 책 : 도서관 관리자의 등장

risingduck 2025. 8. 24. 00:00
반응형

짙은 어둠이 깔린 '재앙의 도서관'에 다시 한번 정적이 흘렀다. 스물 번째 미션을 성공적으로 마친 오미리 일행은 잠시 숨을 고르며 다음 책장을 향해 걸어갔다. 희미한 빛을 내는 책등들이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그 사이를 걷는 발걸음마다 미세한 먼지가 빛을 반사하며 흩날렸다. 이 공간은 그 자체로 거대한 이야기의 무덤이자, 새로운 진실이 태어나는 요람이었다.
 
“미리야, 괜찮아? 너무 무리한 거 아니었어?”
 
강태섭이 오미리의 어깨를 감싸며 물었다. 그의 두 손검은 이미 검집에 들어가 있었지만, 손잡이를 움켜쥔 손가락에는 여전히 전투의 여운이 남아 있었다. 오미리는 고개를 저으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괜찮아, 태섭아. 오히려 이번 미션 덕분에 ‘심판의 시간’ 능력이 더 강해진 것 같아.”
 
그녀의 단호한 눈빛이 짧은 흑발 아래서 빛났다. 쌍단검은 이미 제자리를 찾았지만, 그녀의 내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철함은 여전했다. 그때, 조용히 뒤를 따르던 한서영이 오미리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이거… 네가 잃어버렸던 기억의 조각이야.”
 
서영의 손바닥에는 투명한 유리 조각 같은 것이 놓여 있었다. 지난 미션에서 서영의 능력 '기억의 직조'가 발동하며 우연히 발견한 것이었다. 오미리는 조각을 받아들었고, 조각이 그녀의 손에 닿자마자 따스한 빛을 내며 스며들었다.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흐릿했던 어떤 장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어린 시절, 낡은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는 자신의 모습. 그리고 그 옆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흰 가운을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는 미소 짓고 있었지만, 그 눈동자는 깊고 무거운 슬픔을 담고 있었다.
 

 
"도서관… 관리자?"
 
오미리의 입에서 무의식적으로 그 단어가 흘러나왔다. 그녀의 눈이 흔들렸다. 그때였다. 일행의 발걸음이 멈춘 곳에, 다른 책들과는 확연히 다른, 거대한 검은 책이 나타났다. 책의 표지는 검은색 가죽으로 덮여 있었고, 제목은 없었다. 대신, 금빛으로 새겨진 십자가 문양이 깊숙이 박혀 있었다.
 
"이번 책은… 뭔가 달라."
 
최성재가 쌍권총을 움켜쥐며 나직이 말했다. 그의 '영웅화' 능력은 아직 발동되지 않았지만, 그의 긴장한 모습이 상황의 심각성을 말해주고 있었다. 오미리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녀는 검은 책 앞으로 다가가 손을 올렸다. 차가운 가죽의 감촉이 손끝에 닿았다.
 

손이 닿자마자 책이 굉음과 함께 펼쳐졌다. 검은 페이지들이 바람처럼 흩날리며 오미리의 눈앞에 거대한 문자들이 떠올랐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미션과는 차원이 다른, 거대한 이야기의 흐름이었다.
 
[미션 내용] 제목: ‘관리자의 실패’ 이야기 오류: 한국 서울, N서울타워에서 과거의 진실이 왜곡되어 ‘도서관의 관리자’의 흔적이 지워지고 있습니다. ‘관리자’가 존재하지 않게 되면, 도서관을 유지할 수 없게 되어 모든 이야기가 소멸하게 됩니다. 관리자의 기억을 되살려 진실을 복원하십시오.
미션 장소: 대한민국 서울, N서울타워 종료 조건: N서울타워 정상에서 ‘관리자의 기억’을 복원하고, 왜곡된 진실을 바로잡는다.
 
미션 내용이 사라지자마자, 오미리 일행의 몸이 강렬한 빛에 휩싸였다. 눈을 감았다 뜨자, 그들은 이미 N서울타워의 정상에 서 있었다. 서울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화려한 도시의 불빛은 아름다웠지만, 그 아래에서 느껴지는 묘한 불안감이 오미리의 신경을 곤두세웠다.
 
“미션이… N서울타워라고?”
 
최성재가 주위를 경계하며 말했다. 평온해 보이는 도시와 달리, 타워 주변의 공기는 기묘한 왜곡을 품고 있었다. 건물들의 윤곽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고, 사람들의 얼굴은 마치 흑백 영화의 한 장면처럼 흐릿하게 보였다.
 
"이게 바로 '이야기 오류'의 영향이야."
 
오미리가 나직이 말했다. 그녀의 '심판의 시간' 능력이 발동되자, 흐릿했던 세상이 마치 고해상도 이미지처럼 선명해졌다. 사람들의 모습은 여전히 흐릿했지만, 그들이 내뿜는 불안과 절망의 감정이 파동처럼 느껴졌다.
 
“자, 다들 준비해. 이번 미션은 단순한 전투가 아닐 거야.”
 
그녀의 말과 동시에, 타워 정상의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울렸다. 정적을 깨고 나타난 것은 거대한 그림자였다. 그것은 형체가 없는 연기 덩어리 같았지만, 그 안에서 수많은 책의 페이지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도서관 관리자’의 진실을 지우려는 ‘이야기 오류’의 화신인가….”
 
강태섭이 양손검을 뽑아들며 자세를 잡았다. 검은 강철의 빛이 번뜩였다. 최성재는 이미 쌍권총을 뽑아 들었고, 한서영은 오미리의 뒤에 서서 그녀의 능력을 보조할 준비를 했다.
 

 
괴물은 페이지를 흩날리며 오미리 일행을 향해 돌진했다. 첫 번째 공격은 바람을 가르는 듯한 페이지의 날카로운 칼날이었다. 오미리는 몸을 숙여 칼날을 피했고, 쌍단검을 휘둘러 괴물의 몸체를 베었다. 단검이 닿는 순간, 페이지들은 종잇조각처럼 찢겨 나가며 소멸했다.
 
하지만 괴물은 끊임없이 자신을 재생시켰다. 오미리가 파괴한 페이지들은 순식간에 다시 나타나 괴물의 몸체를 복구했다. 그 와중에 강태섭의 양손검이 거대한 굉음을 내며 괴물을 내리찍었고, 최성재의 쌍권총에서 뿜어져 나온 총알이 섬광처럼 괴물을 관통했다.
 
“소용없어…! 우리가 파괴하는 만큼 더 빠르게 재생돼!”
 
최성재의 외침이 허공을 갈랐다. 오미리는 괴물을 상대하는 동시에,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기억의 조각들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관리자의 실패'라는 미션 제목. 그리고 어릴 적 기억 속의 흰 가운을 입은 남자.
 
"서영아, 내 기억을 '직조'해줘. 이 괴물이 복구되는 원인을 찾아야 해!"
 
오미리의 외침에 한서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손에서 옅은 빛이 피어올랐고, 그 빛은 오미리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서영의 능력 '기억의 직조'가 발동되자, 오미리의 과거 기억들이 서영의 눈앞에 영상처럼 펼쳐졌다.
 

서영의 눈에 비친 오미리의 기억은 혼란스러웠다. 수많은 책들과, 흰 가운을 입은 남자의 모습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그 기억들 사이에는 ‘결정적인 순간’이 빠져 있었다. 바로, 남자가 사라지는 순간의 기억이었다.
 
“미리야… 네 기억이… 단편적이야. 가장 중요한 부분이 지워져 있어.”
 
“지워져 있다…?”
 
오미리는 눈을 떴다. 괴물은 이미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때, 그녀의 머릿속에 섬광처럼 한 단어가 떠올랐다.
 
“파멸의 심판자.”
 
그것은 그녀의 '심판의 시간' 능력을 일깨우는 주문과도 같은 단어였다. 그 단어를 외치자, 그녀의 눈동자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왔다. 오미리는 더 이상 괴물의 형체에 집중하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괴물을 이루고 있는 페이지들, 그중에서도 가장 중심에 있는 ‘원본’을 향했다.
 
“저기에 있어! 저 페이지가 바로 ‘이야기 오류’의 핵심이야!”
 
오미리는 괴물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강태섭과 최성재는 그녀가 길을 열 수 있도록 괴물을 향해 맹렬한 공격을 퍼부었다. 강태섭의 양손검이 괴물의 몸을 가로질러 거대한 틈을 만들었고, 최성재의 총알이 그 틈을 따라 정확히 박혔다.
 
“지금이야, 미리!”
 
오미리는 쌍단검을 들고 틈새로 뛰어들었다. 괴물의 내부는 혼란 그 자체였다. 수많은 페이지들이 소용돌이치며 그녀를 찢어발기려 했지만, 그녀의 '심판의 시간' 능력은 페이지들의 흐름을 분석하고,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마침내, 그녀는 괴물의 중심에 있는 한 페이지를 발견했다. 그것은 다른 페이지들과 달리 희미한 빛을 내고 있었고, 그 안에는 어린 시절의 오미리와 흰 가운을 입은 남자가 함께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남자의 얼굴은 누군가 일부러 지운 것처럼 희미했다.
 
“네놈이… 도서관 관리자의 기억을 지웠구나!”
 
오미리는 단검을 내리찍으려다 멈칫했다. 그녀는 그 페이지에서 슬픔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히 '이야기 오류'가 아니라, 누군가의 깊은 슬픔이 만들어낸 왜곡이었다. 그녀는 단검 대신, 손을 뻗어 그 페이지를 감싸 안았다.
 
“‘심판의 시간’.”
 
그녀의 능력은 파괴가 아닌, '복원'에 집중되었다. 페이지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희미했던 남자의 얼굴이 서서히 선명해졌고, 지워졌던 그의 표정, 그리고 눈빛이 되살아났다. 그는 오미리를 바라보며 슬프지만 따뜻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고마워… 미리야.”
 
오미리는 그 목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어린 시절 그녀가 들었던 그 목소리였다. 순간, 페이지가 빛의 가루가 되어 사라졌고, 괴물의 형체 역시 서서히 흩어지며 N서울타워의 야경 속으로 녹아들었다.
 

 
미션이 종료되자, 오미리 일행은 다시 도서관으로 소환되었다. 그녀의 손에는 '관리자의 기억'이 복원된 '진실의 책갈피'가 들려 있었다. 책갈피는 따뜻한 빛을 내며 그녀의 손에 안겨 있었다.
 
“성공했구나, 미리.”
 
강태섭의 목소리에는 안도감이 서려 있었다. 한서영은 오미리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네 기억이… 온전해졌어.”
 
하지만 오미리의 마음은 복잡했다. '도서관 관리자'는 누구인가? 왜 그의 기억은 지워졌는가? 그리고 그를 지우려는 '이야기 오류'의 진짜 정체는 무엇인가?
 
“아직… 끝이 아냐.”
 
오미리는 진실의 책갈피를 가슴에 품었다. 그녀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알았다. 다음 책장에서, 진짜 ‘이야기의 심판’이 시작될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끝에, 이 모든 것을 설계한 '재앙의 도서관'의 진짜 주인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