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앙의 도서관

스무 번째 책 : 비밀의 층계

risingduck 2025. 8. 22.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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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리는 낡은 나무 계단을 올려다보았다. 어두컴컴한 도서관의 3층, 책장의 미로 속에서 유독 낡고 오래된 티가 나는 계단이었다. 주변의 책들은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지만, 이 계단만은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고, 밟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불안한 소리를 냈다.

 

 

"여기에 뭔가 있어."

 

오미리의 말에 강태섭이 묵직한 양손검을 든 채 주변을 경계했다. 최성재는 쌍권총의 안전장치를 풀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계단 위를 쏘아보았다. 한서영은 조용히 눈을 감고 손을 뻗어 계단 주변의 흐릿한 기억의 잔상을 더듬었다.

 

"불안정한 기억의 파편들이 느껴져요. 마치… 누군가가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숨기려 한 흔적 같아요."

 

한서영의 말에 오미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의 미션, **<숨겨진 서고의 비밀>**은 인천의 한 오래된 해양 역사 박물관의 기록 보관소에서 시작되었다. 책을 펼치자 나타난 **'이야기 오류'**는 박물관 지하에 존재하지 않는 비밀 서고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미션의 종료 조건은 그 비밀 서고로 이어지는 **'숨겨진 층계'**를 찾는 것. 현재 그들은 미션의 단서에 따라 재앙의 도서관 내에서 그 층계를 찾고 있었다.

 

오미리는 조심스럽게 첫 번째 계단을 밟았다. 삐걱! 요란한 소리가 정적을 깼다. 먼지가 풀썩이며 시야를 흐렸다.

 

"조심해."

 

강태섭의 주의에 오미리는 긴장하며 다음 계단으로 발을 옮겼다. 계단을 오를수록 주변의 공기는 더욱 무거워지는 듯했다. 희미하게 곰팡이 냄새와 오래된 종이 냄새가 섞여 코를 찔렀다.

계단 중간쯤 이르렀을 때, 최성재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뭔가… 느껴져."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계단 옆 벽면이었다. 평범한 벽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보니 희미하게 다른 색깔의 벽돌이 섞여 있었다. 오미리는 쌍단검의 날카로운 끝으로 그 부분을 조심스럽게 긁어보았다.

드득.

작은 돌멩이 하나가 떨어져 나갔다. 그 안쪽은 텅 비어 있었다.

 

"이쪽이야."

 

오미리의 확신에 강태섭이 자신의 검으로 주변 벽을 두드려 보았다. 둔탁한 소리가 울리는 곳이 있었다.

 

"여기다."

 

세 사람은 힘을 합쳐 벽돌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낡은 시멘트 가루가 날리고, 마침내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만한 작은 입구가 드러났다. 입구 안쪽은 칠흑 같은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조심해서 들어가자."

 

오미리가 먼저 작은 틈으로 몸을 숙여 안으로 들어갔다. 강태섭과 최성재, 그리고 한서영이 그 뒤를 따랐다.

좁고 어두운 통로를 따라 한참을 걸어 들어갔을까. 마침내 눈앞에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희미한 푸른빛이 천장 어딘가에서 새어 나와 공간을 비추고 있었다. 그 빛 아래 드러난 것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서고였다.

 

 

"이게… 비밀 서고?"

 

강태섭의 굳은 목소리가 텅 빈 공간에 울려 퍼졌다. 책들은 겉보기에도 수백 년은 족히 되어 보였고, 일부는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스러져 있었다. 공기 중에는 퀴퀴한 먼지 냄새와 함께 묘한 기운이 감돌았다.

오미리는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낡은 책장 사이사이에는 거미줄이 쳐져 있었고, 바닥에는 먼지와 함께 오래된 종이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다.

 

"이야기 오류… 대체 어디에 숨겨져 있는 거지?"

 

그때, 한서영이 무언가를 발견한 듯 손짓했다.

 

"저쪽을 보세요."

 

그녀가 가리킨 곳은 서고 가장 안쪽에 있는 커다란 책상 위였다. 책상 위에는 유독 낡고 두꺼워 보이는 책 한 권이 놓여 있었다. 책의 표면은 검은색 가죽으로 덮여 있었고, 군데군데 붉은색 얼룩이 묻어 있었다.

오미리는 동료들과 함께 조심스럽게 책상으로 다가갔다. 책의 표지를 자세히 살펴보자, 희미하게 긁힌 듯한 글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망각의 기록』

 

"망각의 기록…?"

 

오미리가 책을 집어 들자, 주변의 푸른빛이 더욱 강렬해졌다. 동시에 책에서 차갑고 음산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조심해! 뭔가 이상해!"

 

최성재의 외침과 동시에 책 표면에서 검은 그림자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림자는 곧 형체를 갖추기 시작하더니, 날카로운 발톱과 붉은 눈을 가진 기괴한 형상으로 변모했다.

 

"크아아아!"

괴물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서고 전체를 뒤흔들었다. 그것은 마치 오랫동안 봉인되어 있던 악령이 깨어난 듯한 섬뜩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오미리는 즉시 쌍단검을 뽑아 들고 전투 태세를 갖췄다. 강태섭은 묵직한 양손검을 괴물에게 겨누었고, 최성재는 쌍권총으로 놈을 견제했다. 한서영은 주변의 기억의 흐름을 읽으며 괴물의 약점을 찾으려 애썼다.

 

"저 녀석… 잊혀진 기억의 잔재인 것 같아요! 고통과 절망의 감정이 뭉쳐진 존재야!"

 

한서영의 외침에 오미리는 괴물의 붉은 눈을 똑바로 쏘아보았다. 망각 속에 갇힌 고통의 그림자. 그것이 바로 이 비밀 서고에 숨겨진 '이야기 오류'의 실체였다. 이제 그 오류를 심판하고, 망각 속에 갇힌 이야기를 제자리로 돌려놓을 시간이었다.

괴물은 날카로운 발톱을 휘두르며 맹렬하게 공격해 왔다. 오미리는 재빠른 움직임으로 놈의 공격을 피하며 쌍단검으로 틈틈이 놈의 몸통을 베었다. 하지만 괴물의 몸은 마치 그림자처럼 흐릿해서, 공격이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

 

 

"안 돼! 물리적인 공격은 통하지 않아요!"

 

오미리의 외침에 강태섭은 검을 휘둘러 괴물을 밀어붙이며 소리쳤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기억… 잊혀진 기억이 녀석의 본질이야! 그걸 건드려야 해!"

 

한서영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괴물이 흉측한 입을 벌리고 검은 안개를 뿜어냈다. 안개는 닿는 순간 피부를 썩게 만들 듯한 역한 기운을 풍겼다.

 

"크억!"

 

최성재가 급히 뒤로 물러섰지만, 팔 일부가 검게 변색되었다.

 

"성재 씨!"

 

오미리는 이를 악물고 괴물에게 달려들었다. 놈의 주의가 자신에게 쏠린 틈을 타 한서영이 능력을 발휘했다. 그녀의 주변으로 수많은 빛의 조각들이 떠올랐다. 그것은 이 서고에 잠들어 있던, 잊혀진 기억의 파편들이었다.

 

"기억의 직조!"

 

한서영의 외침과 함께 빛의 조각들이 괴물에게로 날아들어 놈의 그림자 같은 몸에 박혔다. 괴물이 고통스러운 듯 몸부림쳤다. 잊혀진 기억들이 놈의 존재를 뒤흔들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이야!"

 

오미리는 틈을 놓치지 않고 괴물의 심장 부위를 향해 쌍단검을 찔러 넣었다. 칼날이 닿는 순간, 괴물의 형체가 불안정하게 흔들리더니 검은 연기처럼 흩어지기 시작했다.

 

"크아아아…!"

 

마지막 비명과 함께 괴물은 완전히 소멸했고, 서고 안에는 다시 희미한 푸른빛만이 감돌았다.

오미리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흩어진 검은 연기가 사라진 자리에는, 한 권의 빛바랜 일기장이 떨어져 있었다.

 

"이게… 이야기의 진실인가?"

 

오미리가 일기장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다. 낡은 종이 위에는 누군가의 슬픔과 절망, 그리고 간절한 소망이 담긴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잊혀진 채 고통받던 기억의 조각들. 그것이 바로 이 비밀 서고를 만들어낸 **'이야기 오류'**의 근원이었던 것이다.

이제 그녀는 이 일기장을 통해 잊혀진 이야기를 세상에 다시 알려주고, **'이야기 오류 심판'**을 마무리해야 했다. 인천의 해양 역사 박물관 지하 깊숙한 곳에 숨겨진 비밀 서고에서, 오미리와 그녀의 동료들은 또 하나의 재앙의 씨앗을 제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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