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앙의 도서관, 그 끝없는 지식의 미궁 한가운데서 오미리는 열세 번째 책을 응시하고 있었다. 책의 표지는 해진 가죽과 덧댄 천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마치 오랜 시간 덧붙여진 흉터처럼 보였다. 그 위에 새겨진 제목은 <새로운 동료, 오래된 상흔>. 오미리는 책에 손을 얹었고, 희미한 빛이 그녀의 손을 감쌌다.
"이번엔 또 어떤 이야기를 수정해야 할까."
오미리의 옆에 선 강태섭은 그의 양손검을 든 채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된 상흔이라니. 누군가의 과거와 관련된 미션이겠군."
최성재는 쌍권총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새로운 동료가 생긴다는 건 희소식이지만, 그 동료의 아픔을 함께 짊어져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겠지."
책이 서서히 펼쳐지자, 낡은 페이지 위로 붉은 글자가 떠올랐다.
[미션: 이야기 오류 심판]
- 이야기 오류: <진실의 조각을 잃어버린 용병의 기억>
- 오류의 징조: 과거의 고통이 현실을 왜곡하여 '상흔의 망령'을 만들어내고 있음. 이 망령은 진실을 감추고 거짓된 공포를 주입하여, 이야기의 주인공을 영원한 절망에 가두려 한다.
- 미션 장소: 부산 자갈치 시장
- 미션의 종료 조건: '상흔의 망령'이 소멸하고, 이야기의 주인공이 잃어버린 진실을 되찾을 것.
메시지가 사라지자마자, 도서관의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소용돌이가 오미리 일행을 집어삼켰고, 그들이 정신을 차렸을 때, 코끝을 찌르는 비릿한 바다 냄새와 활기 넘치는 사람들의 소음이 그들을 감쌌다. 그들은 부산의 명물, 자갈치 시장 한복판에 서 있었다. 싱싱한 해산물이 가득한 수조와 흥정하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뒤섞인 생동감 넘치는 풍경이었다.

"여기가... 자갈치 시장?" 최성재가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부산은 처음인데, 생각보다 시끌벅적하네."
"오류의 징조는 아직 보이지 않아. 일단 주변을 탐색하자."
오미리가 쌍단검을 손에 쥐며 차분하게 말했다. 그때였다. 저 멀리서 한 여성이 무언가에 쫓기듯 허둥지둥 뛰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뒤로는 검은 연기처럼 일렁이는 형체가 따라붙고 있었다.
"저거다." 오미리가 빠르게 손짓했다. "강태섭, 최성재. 나를 따라와."
일행은 인파를 헤치고 달려갔다. 그들은 가까이 다가가서야 그 여성이 미션의 주인공, 한서영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의 눈은 공포에 질려 있었고, 그녀를 쫓는 검은 형체는 마치 그녀의 그림자처럼 꿈틀거렸다. 망령은 사람들의 시야에는 보이지 않는지, 오직 한서영만이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도망쳐봤자 소용없어! 너의 과거는 영원히 너를 따라다닐 거야!"
망령이 징그러운 웃음소리를 내며 외치자, 한서영은 비틀거리며 넘어졌다. 바로 그때, 오미리가 망령의 앞을 막아섰다.
"이야기의 오류. 너의 심판은 여기서 끝이다."
오미리가 쌍단검을 휘두르자, 은빛 검날이 망령의 형체를 가로질렀다. 망령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지만, 이내 다시 몸을 회복했다. 망령은 오미리에게 달려들며 외쳤다.
"네까짓 게 뭘 안다고! 이 상처는 결코 지워지지 않아! 너희도 똑같이 고통받아라!"
망령의 외침과 함께, 시장의 풍경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싱싱한 생선이 가득했던 수조는 썩은 악취를 풍기며 검게 변했고, 활기 넘치던 상인들은 공포에 질린 채 멈춰 섰다. 강태섭과 최성재의 눈앞에는 그들의 가장 아픈 기억들이 환영처럼 떠올랐다. 강태섭은 과거의 전투에서 잃었던 동료들의 모습에 흔들렸고, 최성재는 총알이 빗발치던 전장에서의 무력했던 자신을 마주해야 했다.
"크윽... 이게 대체..." 강태섭이 머리를 부여잡으며 괴로워했다.
"젠장... 정신 차려! 이건 환영이야!" 최성재가 스스로에게 외쳤지만,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오미리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녀의 눈앞에는 재앙의 도서관에 갇히기 전, 그녀가 지키지 못했던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망령은 그들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오미리의 귓가에 속삭였다. "너의 심판은 모두 실패했어. 너는 아무도 구할 수 없어. 너는... 재앙을 막을 수 없어."
하지만 오미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냉철하게 상황을 분석했다. '이것은 이야기 오류의 심판 미션. 망령은 한서영의 과거 상흔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존재. 우리의 약점을 파고드는 것은 망령의 능력이 아니라, 한서영의 이야기가 왜곡되면서 파생된 결과다.'
오미리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심판의 시간'을 발동했다.

"심판의 시간. 이야기의 진실을 밝혀라."
오미리의 주변에서 시간이 느려지고, 망령의 움직임이 정지했다. 그녀는 망령을 구성하고 있는 무수한 이야기 파편들을 읽기 시작했다. 한서영의 기억 속, 그녀는 과거 용병단에 소속되어 있었고, 동료들과 함께 미션을 수행하던 중 배신자의 함정에 빠져 모든 것을 잃었다. 그녀는 유일한 생존자였고, 그 배신자는 그녀의 가장 친한 동료였다. 이 깊은 상흔 때문에 그녀는 그날의 진실을 외면하고, 기억의 일부를 봉인해버렸다. 그리고 그 봉인된 기억의 조각이 망령으로 형상화된 것이었다.
"진실의 조각은... '함정에 빠진 것이 배신자의 의도가 아니라, 그 또한 조종당했던 것'이라는 사실이다."
오미리가 진실을 깨달았을 때, 망령의 형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망령은 더 이상 흔들림 없이 오미리 일행을 괴롭히던 강력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녀는 망령을 향해 소리쳤다. "한서영! 네가 외면했던 진실을 마주해! 너를 배신한 동료는, 너처럼 희생자였어!"
오미리의 외침에 한서영은 멈칫했다. 그녀는 공포에 질린 눈으로 오미리를 바라보았다. "무슨 소리야... 그는... 나를..."
그 순간, 강태섭이 오미리의 옆으로 달려와 망령에게 양손검을 휘둘렀다. 망령은 강태섭의 공격에 움찔하며 더욱 흔들렸다. 최성재는 망령의 후방에서 쌍권총을 난사하며 주의를 끌었다.
"오미리 말이 맞아! 저 망령은 네가 외면한 진실을 먹고 자라고 있어!" 강태섭이 외쳤다. "진실을 마주해야만, 네가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한서영은 주저했다. 그녀의 눈에 과거의 기억들이 다시 떠올랐다. 동료의 따뜻한 미소, 함께 나눴던 꿈들... 그리고 배신자가 총을 겨누던 마지막 순간, 그의 눈빛은 공포와 절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깨달았다. 그는 그녀를 배신한 것이 아니라, 그녀를 지키려다 함께 함정에 빠졌던 것이다. 그 진실을 외면했던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기억의 직조!"
한서영이 자신의 능력을 발동하자, 그녀의 주변에 희미한 빛의 실타래들이 엮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 실타래로 망령을 감싸기 시작했다. 망령은 비명을 질렀다. "안 돼! 이 진실을... 이 고통을... 잊어버려!"
"아니. 이제는 잊지 않을 거야. 이 상흔까지도 나의 일부니까." 한서영의 눈빛이 흔들림 없이 굳건해졌다.
망령의 형체가 해체되기 시작했다. 그때, 오미리가 '심판의 시간'을 해제하며 망령의 심장을 향해 쌍단검을 꽂아 넣었다. 망령은 마지막 비명을 지르며 빛의 파편으로 산산이 부서졌다. 그 빛의 파편들은 한서영의 몸속으로 흡수되었고, 그녀의 얼굴에는 평온한 미소가 감돌았다.
미션의 종료를 알리는 징표처럼, 시장의 풍경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수조의 생선들은 팔딱거리고, 상인들의 활기찬 목소리가 시장을 가득 채웠다. 한서영은 오미리 일행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당신들 덕분에, 이제야 그날의 진실을 마주할 수 있게 됐어요."
"새로운 동료가 되어줄 한서영. 우리를 '재앙의 도서관'으로 안내해." 오미리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한서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손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고, 그 빛은 거대한 포털을 만들어냈다. 그들은 포털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온 오미리는 한서영을 맞이했다. 강태섭은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주었고, 최성재는 그녀에게 쌍권총을 들어 인사했다. 새로운 동료 한서영.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는 이제, 또 다른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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